니체의 차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는 신은 죽었다라고 선포하고 위버멘쉬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땅에 발을 딛고, 선과 악을 넘어서는 가치를 스스로 평가하고 , 천진한 아이처럼 삶을 사랑하라고 한다. 위버멘쉬란 어느 한 곳에 고정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고 극복해서 새로운 나로 넘어 가는 과정을 말한다.
니체 : 1844년 독일의 뢰켄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목사, 새로 결혼하신 할머니도 목사 집안 출신, 니체의 아버지도 목사, 어머니도 목사 딸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는데, 신학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강요에 의해서였다. 그 때 이미 니체는 기독교에 대해 회의에 빠진 상태였다. 문헌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니체는 그 분야에서 천재성을 보였다 . 니체 그는 근대적 이성이라고 불린 것들이 결국은 기독교와 플라톤주의의 세속화라 여겼고, 이런 예속된 근대 정신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주장했다는 의미에서 그를 근대의 혁명가라 할 수 있다.
● 몇 번 째 시도했는지 셀 수 없다. 글을 의무적으로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그 때, 학창 시절에도.......서점을 막 시작했을 그 때에도...
차투스트라는 누굴까? 굉장히 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 이름, 이 언어. 서점을 하면서도 결국 끝까지 읽지 못했다. 눈커플이 천근만근이었다. 이 책을 들자마자....대충의 줄거리와 대충의 작가에 대한 앎이 전부였다.
하지만 서양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니체를 모르면, 차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모르면 그 다음 진도가 나가지 않기때문에 어떻게해서라도 일독을 하고 싶었다. 물론 두꺼운 책으로 일독만 했다.
세월이 흘러 무슨 내용인지 가물가물했다. 그러다가 다시 만화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두 읽고, 간략하게 줄거리를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된 것 같다.
전체가 마음속에 그려지고 그가 무슨 말을 했는 지 알게 되었다. 의무적으로 읽지 않아도 되는 그 기쁨과 즐거움 이란.......
● 먼저 차투스트라는 고대 페르시아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로 실제 존재했던 사람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조로아스터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었다. 흠.....그렇군...별나라 인물이 아나리 배화교를 만든 사람이었다는거군...
그런데 왜 니체는 이토록 이름도 낯설은 차라투스트라라는 이름을 책 제목으로 쓸만큼 중요시했을까 ? 그 이유도 알게되었다.
니체의 집안 내력과 니체가 살았던 네체시타를 안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근데 왜 니체가 살았던 때 보다 천년 이상 된 사람에 대해 썼을까?
흠...나 같은 사람은 차라투스트라, 그가누구인지 역사 책에서만 본 듯도하고, 본 적이 없는 듯도 하건만....
그 이유는 니체가 고대 문화와 서적에 밝은 학자이자 문헌 연구가이자 그 분야에 전문가였고, 교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집안은 대대로 기독교 목사 출신이 많은 그런...역시 책 속에 둘러싸여 있었군.......어쩐지...
니체는 이 책을 통해 자기가 살던 19세기 뿐만아니라 서양의 중세, 근대 문명의 바탕에 이분법적인 사고가 깔려있고, 선과 악의 대립과 투쟁이 역사를 만든다고 본 최초의 인물이었고, 선과 악이 대립하는 도덕 법칙을 최초로 만들어 낸 사람이 바로 차라투스트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가 최초로 대립과 투쟁의 역사를 만들었으므로, 그의 입을 통해서 삶을 사랑하고, 스스로 자신을 넘어서도록 하고, 천진한 아이처럼 세상을 사랑하도록 말하게 하는 것이 니체의 의도인 것이다.
이 책 제목을 그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고 만든 이유를 알게되었다. 이런 기본적인 배경을 이해하면서 이 책을 읽으니까 고통스러운 책 읽기 (무식하다보니..) 가 훨씬 재미를 가지고 접근할 수 있었다.
● 모든 것이 불확실한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었던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더 이상 옛 기준과 법칙들에 얽매이지말고, 각자 자신의 기준과 법칙을 찾아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신이 죽고 없는 그 자리에 위버멘쉬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위버멘쉬란 어느 한 곳에 고정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고 극복해서 새로운 나로 넘어 가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초인 정확히는 독일어 위버와 멘쉬가 합해진 단어다. 위버는 넘어감 우뚝 솟음, 멘쉬는 인간이란 뜻. 매순간 그에게 끝이요. 시작이다.
우리 모두 개인 각자 각자가 대지의 삶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건강하게 살기, 그것이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제시한 그가 원하는 삶의 자세이고,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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