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노이아'의 체험을 갖게 되면, 예수님처럼 완전한 자유인이 된다고 들려주는 그 때 그 책
예수는 없다 -오강남
나의 영혼을 뒤흔든 그 때 그 책 '예수는 없다'
오래된 일기장에서 발견한 한겨레의 서평이 새삼스러워서 좀 더 다듬어서 남겨보려한다.
저자는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알게 된 오강남 그 당시 교수님이셨다. 한국에서 대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맥매스터에서 종교학으로 ph. D.를 받았다.
이 한 권의 책은 나 만이 아니고 그 당시 한국을 뒤흔든 그런 책이었다. 글의 내용이 그 당시 나에게는 너무 충격이어서 책을 모두 읽고 작가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놀랍게도 답장을 보내주셔서 또 한번 더 놀랐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신기하고 새삼스럽다.
책 날개에 지은이의 이런 글이 있다. 제목이 도발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책을 끝까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읽으시고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때 가서 저는 그 분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습니다라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찾기 보다는 머리를 꽝 하고 치는 내용이 많아서 책을 놓을 수 없었던 걸로만 기억이 남는다.
이 책에서 저자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하는 것은 이런 것 같다.
한평생 오로지 비교종교학만 전공한 사람으로서 깨어있는 시간 거의 전부를 동서양의 종교사상에 대해 읽고 생각하고 쓰고 가르쳐왔다.
이런 특수한 배경때문에 산꼭대기에 오른 사람들이 이런저런 코스로 오르더라, 그들이 준비한 장비는 이렇더라, 올라 갔다온 사람들은 이런 저런 경험담을
말하더라 하는 등의 종교에 대한 말씀을 드릴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몇 가지를 제시하며 글을 시작한다.
1) 내가 한 때 가지고 있던 신앙내용을 진리자체라고 하는 오해를 털어내고, 내 정신적 자라남이 무리없이 계속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
2)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믿는 문자주의에서 일단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
3)문자주의에서 해방될 때 자연스럽게 더욱 깊고 의미있는 신관이 생길 수 있다는 것.
4) 이런 새로운 신관과 함께 예수를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되고,
5) 이렇게 달라진 눈을 갖게 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무엇보다도 길을 함께 가는 '길벗'으로 모시게 된다는 것.
6) 그와 함께 길을 가면서 그의 마음을 품는 체험, '메타노이아'의 체험을 갖게 되면, 예수님처럼 완전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 이렇게 될 때 그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진정 '남을 위한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 등이다.
나의 영혼을 뒤흔든 그 때 그 책 '예수는 없다'를 읽고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한겨레 서평난에 글을 올리게 되었고 그 때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타문학을 배우고 지속적으로 읽어야 하는 사람들 중에서 특히 영문학을 하는 이라면 항상 헬레니즘의 문화와 헤브라이즘의 문화에서 빚어져 온 여러 상황들에 노출되어 있으리라 여겨본다.
어쩌면 문자가 발견된 이후의 역사는 이 둘의 타래들이 얼키고 설키어서 때로는 상징으로 때로는 표출된 언어로 우리 사이에 항상 망설이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단지 이것들의 유혹의 몸짓을 알아차리고 어느 작가의 말대로 꼬리를 붙잡아채서 내 것으로 받아드릴 수 있느냐 없느냐는 순전히 그 문화 안으로 뛰어 들어봄이 없이는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헬레니즘 문화에 대해서 거의 4-50권의 책을 본 후로 헤브라이즘 문화에 대해서 이것 저것 둘러보다가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 라는 책을 알게 된 것은 우리 집 손님으로 오시는 신부님께서 집어든 이 한 권의 책이 내 마음을 궁금증으로 뛰게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당시 자그마한 동네에 책방 주인이었다.
신부님이 구매하셔서 더욱 궁금했던 '예수는 없다' 이 책은 나에게 그 전에 읽은 '역사적 예수' 나 '신의 역사'나 '도마복음 강의' 에서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함과 헤브라이즘에 대해 관심만 있었지 왠지 다가가지 못한 나같은 사람에게 친절함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이 책안에서 '믿음은 자라나는 것이다'라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평범하게 들리는 문장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벼락처럼 다가왔다.
왜냐하면 주위의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나가고, 나역시 6개월 정도 교회에 나가보았고 그 속의 사람들의 행동을 보아온 후의 느낌이 있어서였다.
종교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여기는 것 같았고, 나역시 종교 집단안에서는 그렇게 강요 받아온 경험이 있었다.
즉 오직 믿음으로서만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아무 것도 묻지 말고 믿으면 된다고...
그런데 모르는데 어떻게,뭘 믿을 것인가..
예수님이 신임을, 예수님이 내 죄를 대속했다는 것을, 3일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이런 내용들은 나에게 아주 생경한 내용들이었다. 단지 마음이 답답해 조용히 묵상하고 싶어 찾은 예배당은 나에겐 너무나도 낯선 곳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의 사람들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거라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자기 스스로 이성적으로 살아보고자 생각한 사람이라면 하지만 종교 단체안에서는 눈치보느라 질문도 하지 못하고 의무적으로 일요일에 교회를 나가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종교가 나에게 무엇인지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은 그런 사람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며 '믿음은 자라나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그 당시에는 왜 이 한 문장이 그렇게도 눈물이 났던 것일까?
이 책을 이 한 문장으로 압축하기에는 너무 죄송스럽지만 종교에 관심이 있고, 또 지속적으로 문학을 접해야하고, 또 서양문학에 초보자이지만 항상 궁금증이 남아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난 오강남교수의 다른 책도 몇 권 읽었다. 물론 종교학에 적을 두고 계신 분들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겠지만, 최근에 접해서 모든 것을 얻은 것 처럼 이렇게 감동하고 있는 것이 요란스럽지만 이런 책은 몇 권이라도 사서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책 중의 하나임을 알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어느 교수의 말을 빌어 마지막을 가름하려한다. 난 책 고르는데는 전문가다. 그러니 전문가가 하는 말 속는 셈치고 한 번 사서 눈을 한 단계 높이길 바란다. 물론 이 말은 애교로 봐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일기장을 바라 보고 있는 오늘도 그 때 생각이 난다.
그 뒤로 나는 이 책을 정말 많이 팔고 전달하고 안내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난 그 사이에 보아왔던 책과 더불어 '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통해 조금은 영혼의 자유에 이르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배워서 남주자라는 말이 있던데 참 우습지만 와닿는 말인 것 같다.
그 많은 시간을 공부하셔서 아는 것이 없이 어리석은 나와 같은 사람에게 한 줄기 빛을 보여주신 오강남 교수님에게 감사드리면서 이제 조금 알았으니 나도 배워서 남주고 싶다.
이 책을 작은 기록으로 남겨서 전달하는 것으로...
사족: 나의 영혼을 뒤흔든 글귀들
1)영국 BBC 방송국에서 예루살렘 부근에서 발견된 1세기 팔레스타인 사람의 두개골을 바탕으로 최근의 법의학적 지식 과 컴퓨터 기술을 동원하여 역사적 예수에 가까운 얼굴 모습을 합성 발표한 일이 있다. 뭉뚝한 코에 까만 곱슬머리,은 갈색의 피부를 한 전형적인 농사꾼의 모습이었다. 그런 예수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2) 우리의 믿음은 계속 자라나야 한다.
3) 믿음은 어떤 특정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믿음이란 근본적으로 일종의 마음가짐이요 신뢰와 귀의 같은 것이다.
4) 우리말로 '회개'라고 번역된 말의 희랍 원문은 '메타노이아'이다. 메타노이아는 단순히 옛 잘못을 뉘우치고 고친다는 뜻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우리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서 생기는 근본적인 의식의 개변(transformation)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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