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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 감동 글귀들

나의 생각의 지평을 넓혀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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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생각이나 의문없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 중에 신앙이나 믿음을 뜻하는 말로 faith 와 belifs 라는 단어가 있는데, 실은 이 두 언어에는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faith 는 인간으로서 한계성을 깨닫고 이를 넘어서려는 마음이나 결의라면,


belifs 는 faith를 우리의 지적능력 안에서 나름대로 이해하고 표현한 특수 설명체계나 신념체계라고 할 수 있다.


구분이 쉽지않지만, 두 단어의 구별이 상당히 중요하다.  

faith 는 우리 말로 믿음이나 신앙이라면


belifs 는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형제나 부모님에 대해 느끼는 절대적 사랑과 신뢰가 faith 이다.

이런 faith를 나름대로 해석하거나 설명해놓은 것이 belifs 이다.

우리가 모두 부모님에 대해 faith 가 있지만, 형제들이 가진 belifs 는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아버지가 용돈을 잘 주셔서 좋은 분이라는 belifs 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다른 형제들은 아버지가 힘이 세어서 최고라는 belifs 를 가질 수 있다.

어느 belifs 가 옳다고 할 수 있는가?

어느 한 쪽의 belifs 를 받아들여야 faith 가 있고, 그런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faith 가 없다고 하는 것은, faith 와 belifs 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이다.

성경 무오설, 동정녀 탄생, 기적, 육체 부활, 인간의 죄성, 예수의 재림과 심판 등을 무조건 문자적으로 인정하고 의심없이 잘 믿는 것이야말고 잘 믿는 것이고, 그래야 된다는 생각을 사수하고 있는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근본주의자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근본주의 입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고 해서, 성경을 문자대로 읽고 모두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입장을 옹호한다는 뜻은 아니다.


지난 2천년 가까이 성경의 교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들,  그 의미를 토대로 흔들림없이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특수한 시대적 배경과 요구에서 형성된 이런 특수한 교리를 진리 자체로 여기고, 여건이 완전히 바뀐 오늘에도 이런 특수한 교리를 문자대로 붙들고 믿어야 참 신앙인이라고 주장하는데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계속 자라나야한다.


빛이 파장도 되고 입자도 된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한가지 사물의 양면을 동시에 볼 줄 아는 마음, 자기가 가지고 있던 선입관으로 사물을 보는 대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마음.


진리란 단순한 일차방정식 같은 것이 아니라 다차원적이라는 것, 교리나 상징체계 등은 궁극실재에 대한 부분적 표현이라는 것 , 자기의 종교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가 궁극실재와 비교할 때 상대적이라는 것.

따라서 모든 종교가 서로 대화하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 태양빛에 빛나는 여러가지 프리즘 처럼.


그래서 결국 믿음은 어떤 특정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믿음이란, 근본적으로 일종의 마음가짐이요. 신뢰와 귀의 같은 것 ( commitment ) 이기 때문이다. 

성숙한 믿음은 우리를 주눅들게 하지않고, 우리를 신나게 한다. 우리에게 시원함과 툭트임을 가져다 준다.


<오강남의 "예수는 없다 '중에서 >



▶ 다시 읽어봐도 위의 글은 종교란 나에게 무엇인가를 고민할 때  많은 위로와 함께 툭트임을 주었고, 나의 삶의 나아갈 바를 밝혀주었던가를 생각해보면서 감사할 따름이다.

나에게는 이 글이 고타마 싯달타가 35세에 대각한 후 진리 설법을 머뭇거렸을 때가 어떠했을까 생각해보왔다. 세상사람들이 이해하지못할 거라는 두려움,......그러나, 수 
많은 사람들이 깨우치고 싶어한다는 범천의 요청으로 진리 설법에 나선 부처님. 아마도 이 책의 저자도 그런 생각을 하셨을 것 같다. 


믿음은 자라나야 하기 때문에 강요받은 믿음, 이해 되지않은 믿음, 남과 다르면 공동체로부터 추방될 수도 있다는 그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나에게 얼마나 생경하게 들렸던가.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가.


그러나 나처럼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 거라는 범천의 요청이 누구였던지 간에, 이 책을 출간해주신 선생님의 글은 나에겐 너무나 샘물 같은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알진 못하지만 이 책을 낼 수 있도록 도와준 범천과 같은 그 분에게도 같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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