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지구, 생명체로서의 지구를 그려놓은 그 때 그 책
가이아 -러브록 지음. 홍욱희 옮김
러브록은 1919년 7월26일 영국에서 태어나 화학자로 교육을 받았고 의학 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해양 생물학회 회장이자 런던의 왕립 학회 회원이다.
러브록의 아버지는 탁월한 정원사였으며 지구 생명체에 대한 생각의 바탕에 자신 아버지의 모든 생물에 해한 본능적인 애호심에 많은 영향을 받은 듯 보인다.
그는 가스 크로마토그래프의 성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장치를 발명했고 전자 포획 감지기를 가스 크로마토그래프에 부착시킴으로써 남극의 펭귄에서 미국 여성의 모유에서 까지 농약 잔유물을 검출해 낼 수 있게 되었으며, 레이첼 카슨의 불후의 명저 침묵의 봄을 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옮긴 이 홍욱희는 생물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환경과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마이크로코스모스등 다수의 역서가 있다.
대학교 몇 학년때인지는 잊혀졌지만 과제로 제출해야했던 여러 책들 중에 거의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기억은 아스라하지만 꼭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 중에 선명하게 다가오는 책이 러브록의 가이아였다.
지금 다시 오래된 책을 열어 읽어보니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머리속에 이 책이 각인되어있는 이유를 금방 발견하게 되었다.
과학책임에도 문장이 쉽기도 하고 아주 유려하고 아름다움을 잘 묘사해놓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특히나 어렸을 때의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며 써놓은 문장은 그 정원에 같이 서있기나 하듯이 식물들의 향기가 나는 것도 같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리스 로마신화가 지금 처럼 광풍이 불고 지나간 시절이 아니라 영문학 전공자나 타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게나 가끔씩 오르내리던 언어들이 고대 신들의 이름이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을 하는 것은 과제로 제출해야했던 책 제목이 가이아였다.
나는 바로 사전을 찾아서 긴가민가했던 그 뜻을 간직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왠지 그 때도 그 말이 참 가슴에 울림이 있는 단어였고 과학책의 제목으로 참 운치있구나했었다.
책을 읽고 분명히 내용을 파악하고 숙제를 제출했을텐데 수십년이 지난 후 다시 생각해보면 딱 한가지 기억나는 것은 가이아 이 한 단어만이 남아있으니 러브록은 탁월한 제목을 선택했구나 하는 우스꽝스럽지만 사랑스런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가이아를 그 때 부터 맘에 두고 있었던 것을 보면 그 후로 15년 이상을 그리스 로마신화 이해하기에 매달렸던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러브록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생명체로서의 지구, 가이아를 펼쳐보기로 하자.
러브록은 인류가 지구에서 벗어나 우주 공간으로 떠난 여행으로 인해 지구 행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장을 열었다고 했다.
인공 위성들이 우주 암흑속에서 찬연하게 빛나는 지구의 사진들을 전송함으로서 우리들은 지구의 생물적 부분과 무생물적 부분 사이의 상호 관계에 대하여 새로운 개념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개념은 곧 한 가설을 낳게 하였는데, 그 가설에 따르면 지구의 생물들, 대기, 대양, 지표면은 모두 함께 한 복잡한 시스템을 형성하여 마치 하나의 생물처럼 간주될 수 있으며, 그 자체가 이 지구를 생명이 약동하는 쾌적한 장소로 만들고 있다고 하는 가설이다.
그 가설의 제목이 된 이 책 가이아에서는 지구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형상화시키기 위하여 한 연구자가 시공간을 초월한 탐구의 과정에서 수집한 증거들을 기록해 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가이아를 지구의 생물권, 대기권, 대양, 그리고 토양까지를 포함하는 하나의 복합적인 실체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가이아는 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을 위하여 스스로 적당한 물리적 화학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피드백 장치나 사이버네틱 시스템을 구성한 종합체라는 것이다.
가이아는 하나의 가설로서 현재에도 유용하고 자신의 이론적 가치를 이미 스스로 증명한 바도 있다라고 밝혔다.
그가 이 책을 쓴 일차적인 목표는 우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지적 만족을 제공하는 데 있다고 하면서 자연 속을 산보하거나 단순히 자연 속에 서서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지구에 대하여 그리고 지구의 생물들에 대하여 감탄을 발하는 그러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또한 가이아 가설은 자연을 반드시 정복해야만 하는 본원적 힘을 가진 대상으로 간주하는 독선적 견해에 대한 대안이 될것이고, 행성 지구를 아무런 목적 없이 태양계 주위를 방황하는 애달픈 우주선으로 표현하곤 하는 비관적 견해에 대한 대안도 될 수 있기를 희망하는 메시지도 남겨두고 있다.
태초에 우리의 행성, 우리의 태양계가 탄생했던 과정부터 우리 지구 가이아의 유기체로서의 인식과정, 가이아 스스로의 조절 시스템으로서의 역할, 지구의 대기권, 가이아의 해양까지 어떻게 서로 작용하고 역할을 해왔는지를 보여주었다.
마지막에는 인간은 지구라는 커다란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며, 정원의 꽃들과 정원사는 서로 공생 관계에 있다고 보았으며, 가이아와의 공존을 희망했다.
내 영혼을 뒤흔든 그 때 그 글귀들
1) 깊은 어둠의 공간 속에 찬연히 빛나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지구를 간접적으로 볼 수 있을 때, 인류는 고대의 관념과 현대의 지식이 감정적으로 무난히 융합되어짐을 느끼게 되었다.
2) 우리들의 태양계가 처음 열렸던 곳과 시간적 공간적으로 가까운 장소에 초신성의 사건이 있었음은 거의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초신성이라 거대한 별의 폭발을 의미한다..흠..
3) 세포들의 집합체인 우리의 몸이 마치 운동으로 단련된 것 처럼 완벽하게 다듬어져 있을 때 우리들이 거기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인간까지를 포함하는 무수한 생물들의 집합체인 이 주변 세계가 적절히 정돈되어 있을 때 우리들 역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4) 우리들이 갖는 총체적 지성의 어느 정도나 가이아의 부분으로 간주될 수 있을까?
혹시 인간은 가이아의 신경계와 두뇌에 해당하는 존재로, 환경 변화를 의식적으로 예지하는 역할을 떠 맡은 가이아의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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