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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작가

김진명의 살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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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수나라 군사 20만, 2차 30만 군사, 3차 궤운자를 포함하면 수나라 군 3백만을 완전히 궤멸시킨 고구려 명장 을지문덕  찾아가기!

1. 제목 및 저자 소개 

 살수 1,2 - 김진명

김진명은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3년 북핵 위기 속에 집필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450여 만 부 이상 판매되어 첫 번째 작품으로 이미 대한민국 출판 역사상 보기 드문 초대형 작가가 되었다. 신인 작가 시절을 거치지 않고 단번에 밀리언셀러로 데뷔한, 진기한 기록의 작가이다.

 

2. 이 책을 읽게 된 동기

 

서양사만을 관심있게 보다가 우리나라 역사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오래 전 쓰기만 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작가 김진명의 소설 살수 1,2 를 읽게 되었다.

 

6~7세기의 을지문덕. 우리는 그를 잘 모른다.

 

살수대첩이 교과서에서 잠시 언급된 것만을 살짝 볼 수 있었던 기억 이외에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무엇일까?

 

없었다. 그래서 그를 알고 싶었다.

 

300백 만명의 수나라 대군을 맞이해서 몰살 시켰던, 수문제와 수양제 두 황제 모두가 치를 떨었던,

 

우리 기억 속에서 희미게 사라져간 그, 을지 문덕을!

 

 

 

3. 글쓴이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줄거리)


누가 : 가연, 을지 문덕, 영양왕, 건무 , 수문제(양견), 양용, 수양제(양광)

언제 : 6세기 ~7세기

어디서 : 고구려 

 

 김진명은 2002년부터 시작된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의해 중국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고구려를 완전히 들어내어 자신들의 역사로 잡아넣고 있다고 하며, 우리 시대의 전설적인 작가들이 삼국지 편역에만 힘쓰고 있다고 주장한다.

 

동북공정을 격파하려면 우리 고구려 역사에 대해서 더 연구하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잊혀져가는 기억 속의 영웅 을지 문덕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기를 권하면서 이 소설은 시작된다.

 

 느닷없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을지 문덕은 생몰 연대가 정확하지 않는 영웅이다.

 

문덕이 살아가고 있던 시기는, 6~7세기로 남진을  589년 멸하고 중국 역사 중에서 진, 한에 이어 세 번째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 시대이다. 

 

정제의 외할아버지이자 북주의 가장 강대한 세력가인 양견은 허울 뿐인 황제자리를  어린 외손자 정제에게서 빼앗는다.

 

또한 그의 둘째 아들 양광을 통해서 589년 남진을 멸망시킨 후, 양견은 눈을 동쪽으로 돌려 고구려 정벌을 위해 준비를 한다. 

 

수나라가 통일 되기 전 환웅을 받들던 무녀가 있었는데, 북주의 세력가였던 양견이 고구려가 천제의 후예라는 것을 참지 못해 그 맥을 끊기 위해 그의 큰 아들 양용으로 하여금 무녀를 범하게 한 후 그들의 핏줄에 하늘의 자손을 넣겠다는 계략이 꾸민다.

 

그렇게 슬픈 운명을 통해 태어난 가연은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듣고 자신이 태어난 내력을 알게된다.

 

그런 그녀는 고구려인으로서 그녀에게 맡겨진 운명을 실현코자 고구려로 잠입해 을지문덕을 만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치우검을 건네준다.

 

그녀 자신은 비록 수나라의 공주이지만 고구려의 자손임을 밝히고, 고구려가 수나라를 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결국 문덕은 가연 본인의 내력과  수나라에서 고구려인을 위해 첩보원 역할을 자처하는 그녀를 물리칠 수 없어 받아드린다. 

 
그러는 사이 나이가 점점 들어가는 양견, 수문제는 20만 대군을 자신의 아들인 한왕 양양과 대장군 이세적에게 주어 고구려를 치게 명한다.

 

군사 숫자에서 밀린 고구려 문덕은 지략으로 수를 물리치려하고, 수의 요동 주둔군과 정면으로 마주보는 언덕위에 크게 담을 쌓고 천막을 드문드문 세운다.

 

요동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양견의 분노를 촉발하려는 것이었다.

 

계속 담을 쌓고만 있는 고구려군을 보고, 수의 요동군은 고구려 대군이 몰려올 것으로 예상한 나머지, 수의 요동 주둔군은 성문을 굳게 닫고 농성에 돌입한다.

 

1만의 군사로 15만이 머물수 있는 성만 쌓을 뿐 공격을 하지않는고구려군이, 튼튼한 요동성으로 1만 부대가 모두 후퇴한 후에야 수나라 요동군은 사태를 파악했고, 20만의 군대가 요동을 온다는 것에 겁을 먹은 고구려군이 도망갔다고 생각하고, 요동에 도착한 수나라 군사들은 자화자찬을 하며, 일주일간을 머물다가 장안으로 돌아간다.

 

한왕 양양은 20만의 수나라 군사를 이끌고 원정을 떠났지만 1만의 말갈군과 을지 문덕의 선제 공격 계략에 놀아난 것이다.

 

문덕은 수나라가 9월에 공격해올 것을 미리 알고 선제공격을 한 후, 20만 대군을  싸움 한 번 하지않고, 물러나게 한 후 고구려는 수나라가 재침입할 때 까지의 시간을 번 것이다. 

 

이 후 고구려는 수문제에게 사신을 보내 극도로 자극시킨 후 가을이 아니라 여름에 고구려 정벌길에 나서도록 유도한다. 

 

고구려 사신으로 인해 양견은 울화로 쓰러졌고, 당장 고구려 정벌을 명한다.

 

이번 원정이 끝나면 황제로부터 양위를 기대하는 태자 양용, 무위에서는 양광가 비슷하다는 양양, 왕세적을 비롯하여 30만대군이 나선 것이다.

 

시간을 당겨 정벌길에 오른, 그런 수군 30만의 머리위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황제의 사신을 죽여 목을 돌려보낸 일부터 시작해 고구려 왕이 말갈의 군사 1만을 거느리고 갑자기 나타나 마치 큰 병력이 금방이라도 도착할 것처럼 흙벽을 쌓아 올리던 일, 극도로 분노한 황제가 당장 군사를 내라고 호통치던 일, 이를 틈타 마치 큰 장군이라도 되든 듯 양용이 황제 앞에 칼을 차고 들어가 군사를 받아내오던 일들이 수군의 장수에게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이것을 깨달았지만 태자가 동행하기때문에 회군도 할 수 없는 처지의 수군은 장마비가 내리는 가운데, 썩은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고, 설사병이 진중에 돌기 시작했다.

 

수군을 만나 식량을 보급 받을 수 있을거라는 마지막 희망도 풍랑에 모두 좌초되었다는 소식을 시작으로 회군 명령이 내려지고 싸움 한 번 해보지못하고 반수가 되어버린 수나라 군사. 괴질, 홍수, 풍랑 속에 회군 명령이 내려졌고, 태자 양용은 회군할 수 없다고 버티자, 양양은 그를 포박해서 수레에 가둬버린다.

 

10만으로 줄어든 군사는 회군을 시작한다. 패잔병이 되고 굶주림속에 회군하는 수군사들은 힘이 없어 무기를 버리고 회군할 즈음, 뒤에서는 고구려군이 습격해왔다.

 

엉망진창 모습의 수군의 회군이 수나라의 수도에 전해지기 전, 수나라에서 양광은 두 번의 대군을 맞아 오직 계략으로만 수나라 군사를 물리친 을지문덕에 대해 두려움과 함께 복수심으로 불타 이를 간다.

 그 사이 수나라에서 세작 역할을 한 가연,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하늘의 신내림이 있었다면, 그녀 자신은 반드시 단군의 땅을 지켜야 하는 값진 운명을 타고 났다고 믿고 있었다.  

 

가연은 을지 문덕에게 자신의 운명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요구했고, 문덕은 그녀에게 양광의 수하 석환을 죽이도록 유도하고, 그녀는 석환과 고구려 무사와의 진검 대결로 유도해 우선 석환을 죽인다. 

 

가연을  통해서 수나라의 사정을 너무나 정확하게 파악하게 된 문덕은 수나라의 공격에 가공할 만한 계략으로 선제 방어를 할 수 있게된다.

 

하지만 그녀의 운명은 고구려를 살린 대신, 자신의 아버지인 양용에게서는 천대받고 자란 그녀를, 삼촌인 양광은 지극한 사랑을 주어왔는데, 고구려 출정을 앞두고 석환을 진검 대결로 보낸 저녁, 양광은 사랑하는 조카 가연이 고구려의 세작임을 알고 자신을 떠나라고 한다. 

 

하지만 가연은 세상에서 단 한사람을 사랑하는데 그가 삼촌 양광이라 말하고, 양광의 침소에 든 다음 자결한다. 

 

 결국 마지막으로 좌우 24군 113만에르는 군사와 100만이 넘는 궤운자를 포함 거의 3백만에 이르는 수나라 사람들을 이끌고, 수의 황제이자 자신의 아버지였던 자와 태자이자 자신의 형이었던 자를 오로지 나라를 위해 쳐죽인, 그리고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하여  반쯤 미쳐버린 자, 일생에 두 가지 일만 하면 된다고하는 그, 하나는 운하, 하나는 고구려 정벌이라고 외친 그,  양광(수양제)이 이번에 직접 고구려 정벌에 나선다.  

 문덕은 수군 113만을 맞아 요하에서 적의 피를 끓게 한 후 군사를 흩뜨리지 않고 모두 요동성에 집결시켜 시간과 싸운다는 지략으로 맞선다. 

 

강이식 장군이 이끈 1만의 군대는 5만의 수군 선봉군을 맞아 맥궁 화살로 물리친다. 

 

그러나 곧 남은 수군 108만 군대는 수양제와 더불어 강이식, 율려 ,고승, 아야진이 지키고 있는 요동벌에 집결한다.

 

양광 수양제는 이번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낙양에 남겨두고 왔기 때문에 이겨야만하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우문술에게 군사 20만을 주어 요동성을 무너뜨리라고 명령했지만, 천연 암석과 견고한 벽돌로 지어졌고, 지형지물이 복잡하고 까다로워, 파괴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다시 9개군 30만 군사를 가지고 평양을 직공하고 나머지 군사는 모두 요동성을 둘러싸고 기다리라는 명령을 내린다. 

 

요하와 요동에서 전투를 훌륭히 치른  고구려군은, 이제 평양과 압록수로 나뉘어 오는 수군을 건무는 평양에서, 을지문덕은 압록수 부근에서 고구려를 지키려고한다. 

 

1만을 가지고 수나라 수군 5만을 평양성에서 맞은 건무는, 을지문덕의 때론 가지는 것보다 버리는 일이 결국 가지는 것일 수도있다는 말을 교훈 삼아 고구려군 절반을 잃은 후 평양성을 포기한다. 

 

그 목적은 적군의 수륙 양군이 조우하지 못하는데 있었다.

 

패퇴하는 것처럼 물러서는 고구려군에 대해서, 수군 3만은 평양성을 얻었다는 도취감에 술에 취해 있을 때, 고구려군은 평양성에 불을 질러 수군 3만명을 몰살 시킨다. 

 

배에 남은 수군 역시 고구려군의 정찰병이 동원되어 수나라 육로의 본군을 향한 전령이 닿지못하게 되면서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한편 양광이 건의해 만들어진 부병제도로 다듬어진 30만의 별동대들은 전쟁이 승리로 끝나간다는 생각에 도취되어, 을지문덕이 지키고 있는 압록수에 다다른다. 

 

패퇴와 패퇴를 거듭하며 을지문덕은 수나라 30만 별동대를 내륙 깊숙히 유인한다. 

 

백만의 수군이 고구려 강토를 유린할 것임을 안 을지문덕은, 더 이상 고구려 땅을 침입하지 못하게 하기위한 방법으로는 전 수군을 몰살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기 때문이었다. 

 

결국 을지문덕은 군사 5백을 건중에게 주어 안주로 향하게 한다.

 

건중은 거기에서 놀랍게도 1년 전부터 준비과정을 통해, 강의 상류에 거대한 둑에 물이 가득 고여있는 것을 발견한다. 

 

일곱 번 싸워 일곱 번을 진 고구려군은 결국 수나라에 투항한다는 을지문덕의 방문을 받는다.

 

하지만 투항하러 간 을지문덕은, 이 전쟁에서 더 이상 무고한 백성을 해칠 필요가 없다며 황제에게 낙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한 서신을 유사룡에게 준다.

 

그를 통해 수양제에게 전달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럴수록 기가 오른 수군은 공격을 가한다.

 

공격을 가한 수나라 군사들은, 계속 패퇴해온 고구려군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의 힘과 두 배로 불어나는 고구려군을 감지한다.

 

고구려의 검모수가 수나라의 석정을 죽인 후 기가 죽은 수군이 재정비를 하고 고구려 진영 근처까지 왔지만, 고구려군은 나와서 싸우려들지 않고, 시간을 끄는 전략으로인해  결국 수군의 군량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 때 수나라 본군과  연락이 닿지않았던 평양성으로 갔던 내호아의 전령이 도착하는데, 내호아 군이 전멸했다는 소식이 전해온다.

 

결국 배까지 굶게 된 수군은 철수를 결정하고 경계를 하며 퇴각을 하는데, 살수(청천강) 를 도하하할 준비를 시작할 때, 가뭄이라 살수가 말라붙어 부교를 놓을 필요도 없어 바로 도하를 명한다. 

 

수많은 수군이 강을 건너려고했고, 드디어 강이 포화상태가 되었을 때, 고구려의 건중이 강의 상류에서 6개월 동안 넘칠 듯 고여있던 살수의 둑을 터트림과 동시에 무서운 기세로 강물이 휩쓸려 도하하려는 수군을 일시에 몰살시킨 것이다.

 

짧지만 지옥같은 순간이 되었고, 도하하지 못하고 망연자실하고 있는 수군은 숨어있던 고구려군에게 수없이 베어져나갔다. 

 

결국 30만의 별동대는 3천을 남기고 몰살당했던 것이다. 

 

별동대마저 잃게 된 수양제는 결국 낙양에서 남아있는 신하들이 자신을 모반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을지문덕의 서신을 통해 전달받고는 급히 회군해 낙양으로 돌아간다. 

 

낙양으로  돌아온 수양제는 무고한 중신과 그들의 혈육들을 모반의 염려가 있다하여 잡아 죽였다.

 

수나라에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수나라의 인명에 손상을 가하는 무지막지한 을지문덕에게는, 고구려 영양왕이 왕녀를 배필로 주고자 했지만 어떤 상도 마다하고 벼슬마저 내놓은 채 산으로 들어갔다.  

 

결국 수나라는 수문제, 수양제를 결쳐 대규모 고구려 정벌 길에 오르지만 번번히 실패함으로써 수나라의 멸망 큰 원인으로 작용해 멸망해간다. 

 

 그렇다면 이토록 많은 수나라의 인명을 살상케하면서도 왜 수나라는 고구려 정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통일 수나라의 멸망을 낳게 한 고구려와의 전쟁에 목숨을 걸게 되었을까?

 

전쟁을 일으킨 근본적인 이유는 어처구니 없게도 한 권의 역사서로부터 발단이 되었다. 

 

그것은 바로 한 사관이 찾아낸 '상서'라는 문서였다. 

 

요임금을 이은 순임금은 즉위에 즈음해 먼저 예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 동방의 군자국에 사신을 보내 인사를 올렸다. 

 

동방의 군자국은 오래전 동방에 있던 나라로 조선이었던 것이다.

 

또한 시경의 한혁편에 한후라는 인물이 조선사람인데 한후라는 인물이 서주 왕실을 방문했을 때 서주 왕실에서 그를 환대한 내용이었다.  

 

또한 시경의 한혁편에는 서주가, 조선이 추와 맥 지방을 다스리도록 허용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추와 맥 지역은 당시 중원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서주의 왕이 자신의 질녀를 한후에게 주었다는 기록도 있었다. 

 

그의 후예라고 하는 현재 고구려는, 그렇지않아도 중원이 통일된 후에도 유독 고구려만이 조공을 하지않고 있고 고구려왕은 일개 소국의 왕인데 자신, 즉 수문제와 대등한 위치로 자리를 매기고 있었음으로 반드시 고구려를 무너트리고자했던 것이다. 

 

4. 내 영혼을 깨우는 구절들

 

● 순임금은 동방의 군자국 고조선에 천제의 백성이라 여겨 단군에게 사신을 보내 즉위를 알렸다.

 

순임금은 자신을 낮추어 서제라 하였고, 단군을 일컬어 동제라 하였다.

 

● 신기한 전략은 천문을 알았고, 기묘한 계책은 지리마저 통달했네.

 

싸움에 이겨 공이 높았으니, 만족한 줄 알았거든 이제 그만 돌아감이 어떨꼬

- 을지문덕이 수나라 우중문에게 보낸 서신.

 

● 백성을 다 읽고 돌아가는 것과 남기고 돌아가는 것은 차이가 있는 즉 , 오늘을 참고 훗날을 도모하기 바라오.

 

적을 잡기전에 집 안의 도둑을 잡는 게 이치인즉, 급히 낙양으로 돌아감이 어떠하시오

- 을지문덕이 수양제 양광에게 보낸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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